49만원만 내면 누구나 회사대표가 될 수 있는 스펙의 비밀

49만원만 내면 

누구나 회사대표가 될 수 있는 스펙의 비밀

지난해는 나라 안팎이 가짜 뉴스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트럼프는 눈만 뜨면 '나를 비판하는 건 가짜 뉴스'라는 트윗을 올렸고, 한국에서는 드루킹 댓글 조작 논란으로 특검이 설치되기도 했죠. 어디까지를 가짜 뉴스로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가짜 뉴스의 형태는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매체에서 그럴듯한 모양을 갖춘 가짜 뉴스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 실제 존재하는 언론사의 웹페이지와 유사하게 만든 화면에 근거 없는 내용을 만들어 유포하는 경우 정도가 있겠죠. 댓글 조작도 넓은 의미에서 가짜 뉴스의 일종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의 가짜 뉴스도 존재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알 법한 신문사, 방송사에서 내보내는 가짜 뉴스죠. 최근 <한겨레 21>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탐사보도를  했는데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정식 언론사들의 가짜 뉴스 배포가 이루어지는지, 또 <한겨레 21>은 그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알아냈는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이오대 병원 의사에서 부동산 전문가로


출처: 한겨레 21

한겨레에서 발행하는 시사 주간지<한겨레 21>에서는 최근 흥미로운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가짜 뉴스를 사서 스펙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죠. <한겨레 21>에서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은 40세의 서준혁 씨 사례입니다. 그는 마흔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룬 것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출처: KNS 뉴스통신

일본 명문대인 게이오대의 IT 프로페서 코스, 게이오대 병원 신경정신과 수련의에서 시작해 2017~2018년 LH 투자유치 자문관, 서울시 도시재생 연구위원, 한국토지정보 연구소 수석 컨설턴트 등으로 마무리되는 그의 이력은 어떻게 젊은 나이에 이렇게 많은 직업을 거쳐왔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죠. 기술된 경력대로라면 20살에 벌써 해외 명문대 교수였던 서준혁 씨의 정체는 대체 뭘까요? 혹시 백 년에 한 번 나올만한 천재?


출처: 채널A

<한겨레 21>의 확인 결과 그는 천재가 아니라 거짓말쟁이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본 게이오대에서는 서준혁의 재직 사실이 없다고 밝혔고, LH에서는 자사 이름을 도용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 이미 경고를 준 바 있으며, 서울시에는 도시재생 연구위원이라는 직함 자체가 없다고 했다는데요. 하지만 이런 그의 활동,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실어준 곳은 다름 아닌 <동아일보>, <중앙일보(미주)> 등의 이름만 대면 아는 신문사들이었습니다. SBS <생활경제>, 채널A <김현욱의 굿모닝> 등 알만한 방송사에도 그의 얼굴이 나갔고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언론사별 단가표의 존재

일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서준혁 씨는 스스로 자신의 프로필과 기사를 작성해 언론홍보 대행사에 의뢰했고, 대행사에서 언론사들과 접촉해 서 씨의 기사를 출고해 준 것이죠. 이런 대행사의 웹페이지에 접속하면 언론사별 단가표도 찾아볼 수 있다는데요. <중앙일보> 27만 원, <동아일보>23만 원, <경향신문>18만 원, <머니투데이>13만 원, <아시아 경제> 13만 원... 언론사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따라 다양한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다. 다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경향신문, 조선비즈 등의 대형 언론사 매체들은 단가표에 따른 기사 출고 서비스를 잠시 중단한 상태라고 하네요. 


방송은 가격이 훨씬 셉니다. KBS <생방송 아침이 좋다>는 1600만 원, MBC<생방송 오늘 아침>은 1300만 원, SBS <생활경제>는 1100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죠.


49만 원에 회사 대표가 되다


출처: 한겨레 21

서 씨의 가짜 뉴스를 싣는 데 도움을 준 언론 홍보 대행사는 '단가표는 협찬을 위한 것일 뿐, 기사 출고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고 말했답니다. 이에 <한겨레 21>은 직접 대행사를 통해 가짜 뉴스를 싣는 과정을 경험하기로 하죠. 기자가 자신을 '친환경  화장품 업체 페이크의 대표'라고 소개하며 뉴스 게재 여부를 문의하자, 대행사에서는 내용상 문제만 없다면 돈을 내고 언론 홍보가 가능하다는 답을 돌려줬다고 합니다. 단순 교정·교열은 대행사 차원에서, 과장된 내용이나 근거 없는 표현 등이 없는지는 언론사 내부에서 직접 검토한다고 했죠. 세 군데 매체에 기사를 싣는 대가는 49만 3000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자가 사용한 업체명, 학위를 딴 대학, 그 대학에서 조교수로 근무 경험 모두가 거짓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요 일간지 한 군데, 주요 일간지의 자매지 한 군데에 버젓이 실렸으니까요. 주요 경제지에 싣기로 했던 가짜 서면 인터뷰 기사만 게재가 보류되었죠.


해당 기자가 일부러 곳곳에 심어둔 오·탈자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내용상 모순이 있는 부분도 마찬가지였죠. 기사가 나간 뒤 기자가 '오·탈자를 수정해 달라'라고 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바로잡혔다고 합니다.


언론사에서는 대가를 받고 홍보성 기사를 실어준 것뿐이겠지만 아무런 검증 절차 거치치 않는 바람에 결국 언론사의 이름을 걸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데 일조한 격이 된 것입니다.


기자가 직접 홍보대행 업무 겸하기도


출처: MBC 연예

<한겨레 21>만 이런 관행을 눈치챈 것은 아닙니다. 작년 8월 <미디어 오늘>에서도 비슷한 주제의 기사를 내보냈죠. 해당 기사에서는 한 기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기사를 언론사나 대행사가 클라이언트에게 받아 가공 후 올려주는 게 아니라 아예 클라이언트가 기사를 올리게 하는 방식이며, 일부 매체는 기업 홍보팀이나 홍보 대행사에 객원기자라는 이름으로 아예 계정을 넘기기도 한다'고 보도했는데요. 


출처: 한겨레 21

아예 기자가 홍보대행 업무를 겸하기도 한답니다. 한 매체의 소속 기자인 김 씨는  보도자료를 건당 10만 원, 10건 패키지로 신청 시 95만 원을 받고 소속 언론사를 포함한 다양한 언론에 관련기사를 올려주죠.


물론 이런 일들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포털에 입점한 언론의 퇴출을 심사하는 포털 뉴스 제휴평가 위원회 규정에는 광고로 위장한 기사를 제재하는 항목이 있죠. 포털과 각 언론사의 제휴 계약서에도 대가를 받은 홍보성 기사는 전송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특정 기사가 금전의 대가라는 것이 명백히 증명되는 경우에만 제재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한겨레 21>처럼 직접 돈을 내고 기사를 사는 경험을 하지 않는 한, 매일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속에서 어떤 기사가 대가성인지, 정보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겠죠. 


<한겨레 21>은 기사 말미에 자사에서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보도자료 전재료를 받은 사실이 있으며, 그와 같은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해 중지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국내 여론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 언론사, 방송사들은 그만큼 책임 의식도 커야 하겠죠. 자사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기사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 한 번 더 꼼꼼히 살펴보는 게 언론사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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